자외선이란 참으로 귀찮은 존재이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끈질기게 따라와 기어이 피부세포의 일부를 망가뜨려 놓고야 만다.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피부세포의 입장에서는 이 자외선이라는 것이 몸서리쳐지게 싫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만, 자신의 탄생과 존재의 유지 자체가 몸의 가장 경계에서 무언가를 막아낸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불평을 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C'est la vie. 멜라닌을 만들어 막아낼 수 없다면 자신의 몸이라도 던져 산화하여 자신의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는 기관과 조직들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보호하면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면서 대우하라고. 자극만 주고 정화, 복구, 완전한 소멸에 필요한 중간 물질들을 잘 공급해 주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며 손놓고 같이 죽자며 덤벼들지 몰라.

 오늘 오후부터였다. 사람의 머리 위에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팝업창이나 헤어밴드에 달린 응원봉처럼 보이기 시작한 것이. 뒤돌아 서서 찬송가를 부르는 A의 파마머리 위로 네온사인이 번쩍이듯 굵은 고딕체로 선홍빛의 "GREED, 탐욕"이 튀어올랐고, 뒤를 이어 짙은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JEALOUSY, 질투"가 파워포인트의 fade in 기능을 적용한 듯 스르르 나타났다. 한참 가락을 흥얼거리다 다시 앞으로 돌아서는 A의 얼굴에 생각보다 자연스러워 보이는 눈 웃음이 걸쳐져 있었다. 본인의 감정상태에 따라 일반적으로 짝지워 지는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아니어서 약간 의아했고, 그 근육의 움직임이 몹시도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점에서 - 어떤 점에서는 -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본인도 본인의 마음 상태를 모르는 듯 낭창하게 휘어진 눈 가의 주름을 수십여초 이상 유지하는 A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 생각을 바꿔보기로 한다. 이제는, 이러한 사회에서는, 탐욕과 질투에 짝지워지는 표준 얼굴 표정이 바뀌어 가는 것이 대세인 듯 하다. 머릿 속의 데이타베이스를 재정비 해야 겠다.

 

 

 무언가 거액의 복권에 당첨이 된다는 것은 참 안정감을 주면서도 약간은 지루하고 심심한 일이다. 이번에 "375회 슈퍼 인생의 역전, 빛나는"에 프라임으로 당첨이 된 이후 574만 굴드가 수중에 들어오면서 당첨금의 보관과 사용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행스럽게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574만 굴드의 주인공인 것을 모른다. 한 세상 살다 가는 것 원하는 대로 살고 가는게 어떻겠냐는 생각에  깨끗하고 보안이 잘 된 집, 빠르고 비싸 보이는 반짝이는 스포츠카와 SUV, 세단 그리고 큰 정원과 과수원 하나 살 까 생각하다 문득 귀찮아 지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에 지금 거주지 주소와 직업, 소박한 차를 유지하기로 한다. 대신 매 주 5-6일가량 특급 호텔에서 세탁을 포함한 모든 일상생활에 관한 서비스를 받으며 지내는 삶을 살기로 한다. 어쩌다 나와 연락이 되어 내가 지내는 방식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가끔 내게 ' 왜 호텔에서 지내나'며 의구심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면 나는 '삶이 무료하고 휴가 가기는 여건이 안되 호캉스 중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의외로 사람들은 자신보다 낮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실례되는 질문을 했다는 듯한 약간의 우월감이 섞인 미안함을 살짝 내비치며 '그렇군요..'라고 한 뒤 속으로 '이 경비를 쓰고 나면 나머지 삶은 어쩌려구'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번에 구입한 mind reader version 3 렌즈를 착용하고 있을 때는 이런 마음의 변화가 너무 선명히 보여서, 내가 이런 사실을 그 렌즈를 끼지 않은 내 눈앞의 사람들이 모르게 알고 있다는 것이 윤리적으로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잠시 해보게 된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비가 내린다. 어제 풀들이 무릎까지 자라있던 산책로에서 만난 공룡은 파랗고 손바닥 만한 자기 알 세 개를 내어주며 (어미일텐데 왜 자기 알을 내 주는 거지?) 소중히 잘 다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푸르스름한 알 세 개는 꼭 온라인 신선 식품 직송사이트에서 광고하던, 닭들이 제주도의 푸른 초원을 뛰어다니며 낳았다는 청란 을 닮아 있었다. 동그란 알 세 개는 황토색 토기로 빚어 만든 손바닥만한 접시에 60'의 각도로 꽃무늬 모양을 그리며 담으면 흔들리지 않고 꼭 맞는다. 냉장고 위에서 두번째 칸 중간 지점에 알을 넣어 두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다른 가족들이나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이 알을 청란으로 오해해서 프라이라도 해 먹는다면 어떻게 하지? 회색빛 얼룩얼룩한 가죽으로 덮인, 자그마한 코뿔소의 뿔 같아 보이는 것을 얼굴 중앙에 두고 있는 어미 공룡의 모습과 그 당부가 생각나 불안하다. 그렇다고 이 알에 '이건 공룡의 알입니다, ' 라고 표시라도 해 보관한다면  희귀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냅다 이 알들을 가지고 도망가 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 어쩌면, 자초지종을 내게 물어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 뒤 '에리카씨는 참 특이하다는 말이야' 라고 한마디를 기어이 덧붙이고는 나의 알들을 평온히 놓아 둘지도 모른다. 오늘 아침까지 세 개의 푸르스름한 알들은 접시에 담겨 조용히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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